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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퀸스 갬빗> 매력 탐구

cavtus 2021. 1. 8. 12:08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퀸스 갬빗은 공개된 지 4주 만에 6,200만 계정이 시청하며 넷플릭스 미니시리스 사상 최고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23 아이덴티티>로 국내 관객에게 얼굴을 알린 안야 테일러 조이(베스 하먼 역)와 <메이즈 러너> 토마스 생스터(베니 왓츠 역), 해리포터를 괴롭힌 두들리 해리 멜링(해리 벨틱 역)까지 익숙한 얼굴들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시종일관 긴박감 넘치는 체스 게임까지, 매력이 다양하다. 그중 안야 테일러 조이의 비주얼과 연기가 무엇보다 빛나는데, 고아원에서 관리인 아저씨를 통해 체스에 푹 빠지게 되는 천재성에 대한 스토리라인이 평범하면서도 질리지 않는다. 천재성과 광기, 둘 사이에서 베스가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는지 퀸스 갬빗의 매력포인트를 분석해봤다.


 

체스라는 게임의 매력

체스는 말(기물, pieces)로 하는 경기지만 말(음성 기호)은 필요 없다. 악수와 함께 시작한 다음, 백(white) 말이 먼저 움직이고 시계를 누른다. 이후 경기가 끝나면 악수를 하고 끝. 체스에 필요한 말이라곤 "Resign"과 "Draw" 뿐이다. 미쳐버린 엄마의 자살을 뒷좌석에서 지켜본 후, 고아원에 오게 된 베스. 베스는 유달리 말이 없었는데, 자신의 상처를 혼자만 안는 게 안타까웠지만, 타인에게 약점으로 비칠 수 있는 부분을 굳이 말하지 않아 누구보다 굳센 캐릭터였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처를 말하고, 의지하기보다 체스를 만나 64칸의 정사각형 세상을 구축한 것이다. 의지할 사람이 없는 환경에서 사람이 아닌 체스에 의지하게 됐다는 스토리는 베스라는 인물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트라우마 극복법이 그녀의 능력이 되고, 자아가 된다는 스토리라인이 만족스럽다.

이미지 출처. imdb

 

1960년대, 그리고 여성

<퀸스 갬빗>의 첫 회 첫 장면을 제외한 다른 화의 첫 장면은 모두 어린 베스가 엄마에게 들었던 말과 공유했던 추억으로 시작한다. 베스의 엄마는 미쳐버려 자살을 시도했는데, 베스가 뒷좌석에 탄 차에서 이뤄졌다.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것. 신기하게도 베스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고, 곧장 고아원에 입원된다. 그리고 베스는 왜 엄마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계속해서 떠올린다.

 

이 오프닝에서 주목할 부분은 엄마가 베스에게 했던 말 때문이다. 공식 예고편 첫 장면에 등장한 엄마의 대사를 적어보자면, "남자들은 네 인생에 나타나 널 가르치려 들 거야. 그런다고 그들이 더 똑똑한 건 아니야. 그런 놈들은 그냥 지나치고,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 언젠가 넌 혼자가 될 테니”였다. 주로 '여자로서' 강해져야 한다,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대사가 이 드라마에서 왜 필요했을까. 시대적 배경이었던 1960년대에 체스는 말 그대로 '남자'의 경기였다. 베스가 켄터키주로 입양 가서 토너먼트에 출전을 했을 때만 해도 베스는 여자 선수로서 시합에 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규칙은 규칙대로 ‘Rating’을 따야 했고 그렇게 스텝 바이 스텝으로 일궈온 것이다. 토너먼트 경기 때 해리 벨틱이 경기 시간을 훌쩍 넘겨 베스를 상대했다가 진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처음에 여자라서, 어려서 무시당했던 상황이 많았다. 그리고 베스는 자신을 무시한 사람들을 천천히 짓밟는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타운스만이 베스를 ‘특별한 존재’로 알아봤기에 그와의 러브스토리가 애틋했던 것 아니었을까.

 

그녀가 잠자리를 가진 해리 벨틱, 베니 왓츠 그 누구에게도 그녀는 의지하지 않는다. 그저 하룻밤을 같이 보냈을 뿐 그녀는 아쉬워하지도, 매달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에게 체스 경쟁자이면서 후에는 보르고프와의 게임을 도와주는 조력자가 돼 일반적인 시대극의 남성성을 잠재운 채 표현된다. <퀸스 갬빗>은 그때 당시 유일한 여성으로서 남성을 상대해야 했던 여성의 목소리임이 분명하다. 그녀가 남성을 상대로 계속해서 이기고, 결국 보르고프를 상대해 그에게마저 승리를 따내는 모습을 보면 벅차오름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이미지 출처. imdb

 

초록색 알약

‘천재성과 광기는 서로 연관됐다’는 말은 이미 유명하다. 영화 <샤인>의 데이빗 헬프갓, 반 고흐 등 대표적인 천재 캐릭터를 생각해 본다면, 천재성과 광기는 필연적이다. 베스 역시 마찬가지다. 고아원에서 매일 먹어야 했던 초록색 알약으로 그날의 체스 경기를 ‘복기’하는 것. 알약은 일종의 부적이 돼 베스에게 알약이 없는 삶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천재를 다룬 영화는 으레 그렇듯 내리막길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베스는 약물 중독과 함께 알코올 중독까지 함께 겪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겪은 트라우마 때문일까. 퀸스 갬빗 제작자 윌리엄 호버그는 “베스가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하는가? 일반적인 스토리라면 졸린이 베스가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게 돕고, 아마도 몽타주로 표현됐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단순한 해결책에서 멀어지려고 했다(경향신문 기사 ‘퀸스 갬빗’ 제작자는 되물었다 “베스가 약물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확신하는가? 참고)”며 뻔하지 않은 연출에 대해 언급했다. 중독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일차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말로 해석된다. 그런 물리적인 요소가 아닌, 베스가 보르고프의 승리를 통해 그녀 자신의 온전한 자아를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한 드라마였다.

 

알약과 알코올 중독을 이 드라마가 어떻게 풀어내는지가 관건이었다. 마지막 화에서 알약을 직접 변기통에 내려 버리는 모습, 알코올에 의지하지 않고 경기에 임해 승리를 따내는 모습은 그녀가 완전히 벗어났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심을 줬다. 그것 없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는 것. 베스는 그렇게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캐릭터로 남게 됐다.

 

 

퀸스 갬빗. 체스 오프닝 중 하나로, 가운데 있는 폰을 두 개 이동해 백(White)이 자신의 말 하나를 잃지만 유리한 포지션으로 가려는 오프닝.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를 통틀어 역대 가장 매력 있던 주인공 베스가 곧 여왕이었으며 뻔한 스토리라인도, 남성 인물의 적당한 비중으로 인해 더욱 돋보였다. 앞으로 베스 같은 여성 캐릭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부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짧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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