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4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말로 쌓는 관계들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제목을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한 건 소설 중반쯤을 넘게 읽던 때였다. ‘말’하고 있잖아에 말이 특별한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 이 소설은 실어증을 앓는 주인공이 같은 교정원에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며 이겨나가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무작정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에게 약한 인물이기도 하다. 말. 나는 사실 말하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말을 거는 걸 특히 더 좋아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계속해서 궁금하고, 듣고 싶어 자꾸만 말을 걸기도 하고, 엄마 아빠에게도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묻는 것은 좋아하지만 대답은 회피하는 경향도 있고, 오..

review 2021.04.12

라우라 에스키벨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끓어올랐던’ 순간에 대하여 의 원제는 Como agua para chocolate으로, ‘초콜릿을 끓이기 위한 물’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나 상황을 말한다고 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 초콜릿을 끓이기 위해서는 뜨거운 냄비에 바로 넣으면 안 된다. 우선 뜨거운 물을 끓이고, 그 위에 볼이나 그릇을 올린 다음에 녹여야 한다. 사실 초콜릿은 중탕에 녹이는 것이 올바른 조리법인데, 펄펄 끓는 상태가 제목이라니. 그만큼 뜨거운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원제를 단어 하나하나 파고들었던 이유는 사실 책을 읽고 나서 한국어 제목이 와닿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원제에서는 초콜릿의 ‘맛’보다는 ‘끓는 상태’를 더 담은 느낌이라면, 한국어 제목은 ‘맛’에 집중했다. 쌉싸름한 맛을 느끼긴 했지만, 그게 ..

review 2021.02.27

이슬아 <깨끗한 존경>

정확한 시기로 말하자면 작년이지만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내 리추얼 중 하나는 출근할 땐 칼럼을 읽고 퇴근할 땐 e북을 읽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휴대폰을 보면서 지하철을 통해 출퇴근하는 내가 별도의 노력 없이 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1월의 반이 지난 지금까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왔다. 섣불리 말하기엔 쑥스러우나 이렇게 성공적(?)인 성과를 낸 이유는 아침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 때문이고, 퇴근할 땐 새로 시작한 yes24 북클럽에 읽을 책이 많아서다.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이슬아라는 글자가 많이 보였다. 주로 친구들이 올린 책을 통해 봤다. 강릉에 있는 작은 책방에 갔을 때도 두꺼운 이슬아의 책(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보고 "여기도 있네" 생각했다. 조금 읽었을 때는 그때 당시 ..

review 2021.01.18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 속 인물이 내 주위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소설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는 문학이라 현실과 비교하기 어렵지만,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인 소설을 읽으면 가끔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내 주위에 있을 것 같은, 없다면 살아가다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도 안 되는 직감일 뿐이지만 그 서늘함이 무섭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실과의 싱크로율 100% 소설이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 한 명도 빠짐없이 실제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밉다. 분명 미운데,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무식해서일까? 눈치가 없어서일까?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실에서 내가 정의 내릴 수..

review 2020.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