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6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말로 쌓는 관계들 내가 말하고 있잖아의 제목을 다르게 이해하기 시작한 건 소설 중반쯤을 넘게 읽던 때였다. ‘말’하고 있잖아에 말이 특별한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 이 소설은 실어증을 앓는 주인공이 같은 교정원에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며 이겨나가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무작정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람에게 약한 인물이기도 하다. 말. 나는 사실 말하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말을 거는 걸 특히 더 좋아한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계속해서 궁금하고, 듣고 싶어 자꾸만 말을 걸기도 하고, 엄마 아빠에게도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묻는 것은 좋아하지만 대답은 회피하는 경향도 있고, 오..

review 2021.04.12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상의 소음 코로나가 한창 시작하던 때, 루마니아의 인쇄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 바이러스 균의 모양을 확대한 것처럼 생긴 이미지는 자세히 보면 남자가 여성을 폭행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가정폭력은 바이러스처럼 쉽고 빠르게 전염되고,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는 의미를 담았으리라 생각한다. 루마니아는 가정폭력 비율이 상당히 높은데, 통계에 따르면 여성들은 30초마다 한 명씩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된다고 한다. 코로나에 대한 심각성을 역이용해 가정폭력 경고 광고를 제작했다는 것이 그 심각성을 잘 몰랐던 나에겐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자비에 르그랑 감독의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도 마찬가지다. 가정폭력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직접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심각성을 인지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review 2021.04.12

이슬아 <깨끗한 존경>

정확한 시기로 말하자면 작년이지만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한 내 리추얼 중 하나는 출근할 땐 칼럼을 읽고 퇴근할 땐 e북을 읽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휴대폰을 보면서 지하철을 통해 출퇴근하는 내가 별도의 노력 없이 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1월의 반이 지난 지금까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지켜왔다. 섣불리 말하기엔 쑥스러우나 이렇게 성공적(?)인 성과를 낸 이유는 아침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 때문이고, 퇴근할 땐 새로 시작한 yes24 북클럽에 읽을 책이 많아서다.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이슬아라는 글자가 많이 보였다. 주로 친구들이 올린 책을 통해 봤다. 강릉에 있는 작은 책방에 갔을 때도 두꺼운 이슬아의 책(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보고 "여기도 있네" 생각했다. 조금 읽었을 때는 그때 당시 ..

review 2021.01.18

시간이 쌓아 올린 벽에서 마주한 '오징어와 고래'

노아 바움백, 오징어와 고래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오징어와 고래’는 80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단하고 응집력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4명의 가족이 테니스를 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빠 버나드와 첫째 월트가 한 팀, 엄마 조안과 둘째 프랭크가 팀이다. 그들은 마치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진지하게 테니스에 임한다. 버나드는 월트에게 '엄마는 백핸드에 약하니까 그렇게 공을 보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버나드가 백핸드로 보낸 공에 조안이 맞게 되고 그들은 다툰다. 이 첫 장면으로부터 나는 의심하고 두려웠다. 이 영화 전체가. 과연 이들이 만날 운명이 무엇이란 말인가. 감히 상상했고 무서워했다. 그리고 예감은 맞았다. 영화 초반에 버나드와 조안의 부부 싸움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월트가 2층..

review 2020.12.23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소설 속 인물이 내 주위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을 한다. 내가 읽은 대부분의 소설은 작가의 상상에서 비롯되는 문학이라 현실과 비교하기 어렵지만,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인 소설을 읽으면 가끔 등골이 서늘해지곤 한다. 내 주위에 있을 것 같은, 없다면 살아가다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도 안 되는 직감일 뿐이지만 그 서늘함이 무섭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실과의 싱크로율 100% 소설이다.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 한 명도 빠짐없이 실제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일 것만 같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이 밉다. 분명 미운데,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무식해서일까? 눈치가 없어서일까?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실에서 내가 정의 내릴 수..

review 2020.12.22

영화 <조커>

꽤 오래전부터 기대했던 영화이다. 히스 레저의 강력한 조커 연기 이후 과연 누가 조커를 이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아무래도 가장 컸다고 말할 수 있다. 조커는 캐릭터가 너무 뚜렷하고 색깔 있어서 누구의 몸에 입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 때문에 구독하던 외국 엔터테인먼트 기사들 중에 조커가 있으면 무조건 클릭해서 보았고, 그로 인해 많은 비하인드스토리를 찾아 읽기도 했다. * 이 뒤부터는 스포 * 호아킨 피닉스는 연기를 하다 몰입하여 촬영장을 박차고 나간 적이 있으며, 이 영화를 위해 하루에 사과 한 개만 먹으며 체중 감량을 했다. 사실 영화 시작하고 나서 얼굴만 봤을 때는 체중 감량에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등뼈와 갈비뼈가 모조리 드러나는 순간에는 체중 감량이 연기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을..

review 2019.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