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인간이 ‘변화’를 통해 얻는 것들을 <그린 북>이 보여주는 방식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생일 이후로 일 년 중 가장 소중한 날로 다가온다. 무교인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연인 혹은 사랑하는 사람, 가족이랑 보내야 될 것 같은 날. 온 동네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고, 빨강색으로 도배가 되고, 왠지 나도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 날. 매년 친한 친구들과 ‘올해도 같이 보낼 거지?’라는 대화를 나누고 작게나마 준비한 파티를 열고, 와인을 마시며 서로에게 따뜻한 옆자리가 되어주는 날.
<그린 북>을 다 보고 난 후 느낀 감정을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내 옆에 오랫동안 있을 것 같은 든든한 사람들과 소중한 날을 보낸 것 같은 기분. 노란 조명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우리들의 말로 따뜻해진 밤. 18년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이 작품은 백인 운전기사와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국 투어를 준비하는 돈 셜리 박사는 흑인에게는 위험한 미국 남부 투어 공연을 계획하게 되고, 토니 발레롱가를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고용한다. 피부색도, 성격도 극과 극인 두 남자가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는 과정을 담았다.
이 영화는 토니 발레롱가라는 백인을 통해 사람에게 ‘변화’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어느 날, 토니네 집 부엌에 어딘가 고장 나 토니의 부인은 흑인 정비사 두 명을 부른다. 그녀는 고생했다며 물 두 잔을 대접하고, 집에 돌아온 토니는 흑인들이 마신 컵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며칠 후 그는 갑작스레 들려온 전화를 받게 되고, 돈 셜리 박사의 운전기사직 면접을 보게 된다. 그는 할 생각이 없다며 셜리 박사에게 면전에 말했지만 돈이 필요하여 결국 남부 투어를 떠난다. 둘은 켄터키 치킨도 먹고 서로의 문화(차 안에서 맨손으로 치킨을 먹는 토니와 포크가 없다고 치킨을 못 먹겠다던 셜리 박사)를 이해하고 경험하며 서로를 이해한다.
이후 남부 투어를 도는 중간에 셜리 박사가 맞닥뜨린 인종차별들을 토니는 이해하지 못한다. 공연을 할 때는 박수로 대접 받는데 화장실은 대접받지 못하는 곳에서 이용해야 하고, 밥도 같은 곳에서 먹지 못한다. 이때 토니는 느낀다. 말도 안되는 것들에 대해 백인들이 선을 긋고 있었다는 것을. 또한 자신도 과거에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토니는 말이 아닌 주먹으로 이 상황들을 경험해 나간다.
이 영화는 토니라는 인물이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가 돈 셜리 박사를 만나 얻은 것은 그의 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얻은 것이 가장 피상적인 이유겠지만 그는 ‘배려’를 얻었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도착해서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때 가족들이 “그 흑인은 어쩌고저쩌고”이야기하자 “흑인이라고 부르지 마. 대답한다. 인류애도 얻었고, 돈 셜리라는 든든하고 좋은 친구도 얻었다. 즉, 우정도 얻은 것이다. 그리고 토니 부인과 원래 사이좋았지만 더 좋아진 (셜리 박사의 편지 덕분에) 사랑도 얻었다. 그가 한 사람을 만나 이해하고 존중하게 됨으로써 그가 얻은 것들은 평생 배워도 실천하지 못할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그린 방식이 루드무비라는 점이 이 영화를 더 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게 한다. 로드무비는 에피소드들이 많을 수밖에 없어 지루하게 된다. 차가 이동하는 장면, 주인공들이 어딘가에 도착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장면, 비슷한 대사, 비슷한 상황들이 반복되기 때문에 자칫 루즈해질 수 있다. <그린 북>은 재미있는 치킨 에피소드, 중간 중간 식당이나 휴게소에서 편지를 쓰는 것을 도와주는 일, 두 번이나 불러 세운 경찰과의 이야기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절제된 장면과 대사로 정교한 로드무비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말에 따뜻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 셜리 박사가 와인을 들고 토니네 집에 찾아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 어떤 크리스마스 영화보다 따뜻했다. 그들이 친구를 넘어 가족 같은 사이가 된 날, 모든 장벽을 허물고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날, 그 모든 것을 함축한 말이 “메리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사랑한다면, 크리스마스를 단순히 파티나 선물을 받는 날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시간을 공유하는 날로 알고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이 영화로 인해 더더욱 크리스마스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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