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영화 <패터슨>

cavtus 2020. 3. 1. 17:33

 

Paterson is a born poet in Paterson. 삶이 시가 될 때.


 

영화 패터슨은 뉴저지 패터슨에 사는 버스 드라이버 패터슨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침에는 시를 쓰고, 낮에는 운전하고, 밤에는 개를 산책시키며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온다. 월요일부터 다음 주 월요일까지 그의 하루하루를 마치 엿보는 것 같은 앵글로 영화는 진행된다. 매일 똑같은 곳에 똑같은 시간대에 가는 그의 반복적인 일상은 '반복될 것'임을 알아도 관객들에게는 일련의 사건들과 노래로 긴장감을 부여한다.

(스포 있음)

이 영화는 영화 자체가 한 편의 시로 느껴진다. 그렇기에 영화를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가 굉장히 힘들다. 초점을 맞추고 싶은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해석하고 싶어지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비록 누추한 해석이지만 나만의 관점으로 나눠서 영화를 바라본 것을 적었다.

영화의 전체적인 연출로 봤을 때

영화가 시로 느껴지는 점 1

그의 부인 로라는 아침에 그녀가 꾼 꿈을 이야기한다. 하루는 그들이 쌍둥이를 가졌고, 하루는 패터슨이 은색 코끼리 위에 타고 있었다는 꿈이었다. 이후 패터슨의 삶에는 쌍둥이들이 많이 보이고 엮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우리가 시를 읽을 때 주제와는 상관없는 의외의 단어를 발견했을 때 우리가 그 단어에 초점을 맞추고 연관 지어 시를 읽게 되는 것과 같다고 느꼈다.

영화가 시로 느껴지는 점 2

버스 안에서 그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흥미롭게 듣는다. 사람들은 모두 패터슨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제작기 떠든다. 복싱 선수, 패터슨의 한 가게에서 만났던 여자와의 이야기, 패터슨에 살았던 유일무이한 무정부주의자 등 공간을 구성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끝없이 지속되고 반복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은 모두 패터슨이라는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이것이 시의 속성 중 하나인 '반복성'을 나타낸다. 또한 패터슨이 매일 가는 바 사장님의 명예의 전당에도 지역 패터슨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기사 및 사진들만을 붙인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윌리엄스 카를로스 윌리엄스라는 패터슨의 유명한 시인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고, 패터슨은 그의 책을 자주 펼친다.

영화가 시로 느껴지는 점 3

그가 매일 시를 썼던 곳이 같다. 이것은 시로 따지자면 수미상관과 같다. 그가 시를 시작하고 썼던 곳이 그가 시를 쓴 노트를 잃고 나서 스스로를 '버스 드라이버'라 칭하게 되었을 때 제3자의 인물이 그에게 빈 노트를 줌으로써 그는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고 다시 시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얻었다.

즉 그의 일상이 그의 시가 되고, 그의 시가 곧 그의 삶을 만든다.

 

패터슨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을 때

패터슨은 평화로운 삶 속에서 몇 번의 균열이 온다. 핸드폰을 족쇄라고 생각해서 갖고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버스가 고장 나 연락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때 어린아이는 "핸드폰 빌려드릴까요?"라고 선뜻 물어보고 연락 문제는 해결된다. 또 부인 로라는 패터슨에게 계속해서 시를 적은 노트를 복사하라고 한다. 패터슨은 내키진 않지만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알겠다고 한다. 그러나 마빈 때문에 노트가 찢겨서 볼 수 없게 되고, 그는 결국 제3자에게 새 노트를 받는다. 패터슨이 매일 가는 바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이 헤어졌다. 실연을 견딜 수 없었던 애버렛이 장난감 총을 갖고 여자친구를 협박하자 패터슨은 그를 제압한다. 나중에 에버랫을 길 가다 만났을 때 에버렛은 패터슨에게 선뜻 사과를 하고, 좋은 이야기도 나눈다. 패터슨은 삶에 균열이 몇 가지 있었지만 그것이 큰 균열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그가 그의 의지로 창조한 세상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는 것으로 느껴진다.

패터슨의 일상은 평화롭고 무료한 듯하지만 긴장감 있고, 재미도 있다. 만약 패터슨이 브이로그를 찍었다면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브이로그를 챙겨봤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빗대어 말하자면 사람들은 그들의 관심사 만큼의 세계가 그들에게 구축된다.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이야기가 넘쳐나고 반대로 궁금한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삶이란 무미건조할 것이다. 패터슨은 그의 성격으로 이루어진 그의 세상이 시가 되고, 삶이 된다. 그렇기에 그의 삶이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수미상관 같았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부연 설명을 하자면

폭포 앞에서 만난 일본인 여행객은 패터슨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시인이냐고 물어보고, 윌리엄스 카를로스 윌리엄스 시인이 패터슨 출신인 것을 아냐고 물어보고, 패터슨에게도 패터슨의 시인이냐 묻고, 버스 드라이버라고 대답하니까 (버스 드라이버와 시인과의 관계는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시적이라고 대답한다. 마치 패터슨이 시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장 뒤 뷔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내는데, 장 뒤 뷔페의 그림을 보면 바로 부인 로라의 작품과 비슷하다는 것을 단숨에 알 수 있다. 그는 또 "번역된 시는 비옷 입고 샤워한 느낌."이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가 패터슨에게 건넨 빈 노트. "때로는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아하!라는 감탄사와 함께 사라진다. 생뚱맞은 인물이 패터슨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 이것은 우리가 포기하려 했을 때 다시 시작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때로는 아예 다른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가 중간에 만났던 어린 시인도 인상 깊다. 그 아이도 쌍둥이인데다가 자신의 시를 읽어주고,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Cool.이라고 대답한다. 마치 시인은 시인을 알아본다는 듯.

 

결국 패터슨은

패터슨이 노트를 받고 처음 쓴 시로 예상되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Or would you rather be a fish?

종종 내 머릿속에 맴도는 구절은 물고기 구절이다. 마치 노래의 나머지는 노래 속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이 시가 패터슨의 노트가 사라진 후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노트는 없어도 된다. 이제 다시 쓰면 되니까. 그는 다시 시를 쓸 준비가 되었다.

 

며칠 전 배운 영어 표현이 생각나서 문장을 만들었다.

Paterson is a born poet in Paterson. 패터슨은 패터슨에서 타고난 시인이다.라는 문장.

그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대개 많은 유명한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그들의 재능은 그들 안에서뿐만 아니라 타인에게서도 발견되고 시작되듯.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영화 전체가 하나의 시 같았으며 반복되는 리듬과 운율, 은유적 표현이 깃든 장면들의 향연, 예상치 못한 전개의 인물들이 시의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만든다. 지루할 법도 한 타인의 일상을 이렇게 아름답고 평범하고, 또 하나의 시 같은 예술처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던 영화였다. 조만간 <커피와 담배>도 빠르게 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