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개봉한 이재규 감독의 영화 완벽한 타인을 봤다. 영화관에서 굉장히 보고 싶었지만, 결국 못 봤는데 그때 당시 친구들이 영화를 보고는 '이서진이 굉장히 더럽게 나온다', '엄마랑 보기에 좀 그렇더라' 이런 말들이 많아서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봤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영화가 굉장히 좋았다. 어떤 부분에서 좋았냐 하면, 이 뒷부분부터는 스포가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란다.
1. 불편한 대화 속 감독의 의도
완벽한 타인 후기를 검색해보면, 상당 부분 '불쾌하다'는 반응이 많다. 물론 나도 불편했다. 유해진의 '쌉가부장'적인 태도와 행동, 이서진의 선을 넘는 바람, 게이에 대한 불편한 대화들이 그랬다. 속으로 '결혼은 이래서 하면 안 돼'라며 봤다. 그렇지만 대사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불편하다는 감정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가부장적인 분이 이 영화를 봤다면, 불편한 점을 못 느끼겠지만 영화가 끝난 후 불편한 감정들을 나누는 글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이런 대화들을 가지고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의도로 만들지 않았겠는가,이것이 내 생각이다.
더불어 게이에 대한 대화는 더 좋았는데, 아직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점들을 꼬집어 말하는 것이 더 좋았다. 특히 유해진이 "내가 두 시간 동안 게이가 돼봤는데, 진짜 못 해 먹겠더라."라고 말하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그런 대사들이 오히려 성소수자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직접 꼬집은 부분이 아닐까. 우리 모두들 성소수자들을 이해하고 싶어 하고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나 혹은 주위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면 뒷걸음질을 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 스스로에게 실망을 했다.
2. 두 개의 결말
결말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했지만, 나는 두 개여서 더 좋았다. 감독이 직접 밝혔듯 <인셉션>을 패러디하여 반지가 돌아가기 전은 핸드폰 게임을 한 후이고 반지가 돌아가지 않는 장면이 핸드폰 게임을 하지 않았을 때이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적인 부분은 핸드폰 게임을 한 것이고, 마지막에 짧게 핸드폰 게임을 하지 않은 마지막 장면으로 끝이 난다.
왜 결말이 두 개인 것이 더 좋았냐면 사실 비밀이 점점 밝혀지고 총체적 난국이 되면 될수록 '알고 헤어지는 게 낫다'라는 생각으로 봤다. 대체 저런 비밀이 있는 사람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마음 말이다. 그러나 결말이 드러나고 나서 '모르고 사는 게 낫지'라는 생각을 반대로 해버렸다.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핸드폰 게임을 하지 않았을 때는 모두가 일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 어떤 결말도 나는 바라지 않는다. 솔직히 둘 다 비극이다. 모르고 살았는데 알고보니 이렇더라, 라던가 알고 살았으니 이제 혼자만의 길을 가려한다, 라던가. 둘 다 비극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택하자면 '그래도 조금은 행복할 수 있는 모르고 살자'가 아닐까.
3. 테이블에서 대화를 하는 장면만으로 이끌어내는 몰입도
사실 이 영화는 제작비 대비 흥행성적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기껏 해봤자 좋은 집, 좋은 음식, 좋은 접시, 인테리어 등등 말고는 제작비를 쓴 곳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지만, 각자의 비밀이 서로 얽히고 설킨 설정이 더 몰입도를 이끌어내준 것 같다. 촬영은 주로 배우들의 얼굴과 핸드폰을 화면 가득 차게 설정해 놓았는데 배우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 핸드폰의 벨소리가 무서워지는 것, '이제 연락하지 마'를 속으로 외치고 있는 나를 보며 몰입도가 끝내준다고 생각했다.
극 중 게임을 제안하는 사람은 김지수인데, 김지수는 바람피고 있는 사람이 이서진이기 때문에 게임하자는 말을 쉽게 했다. 그리고 중간에 조진웅 옷에 와인을 쏟아서 화장실에서 둘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뜨거운 물에 담근 조진웅 옷에서 나오는 와인이 피같이 보이는데, 그 장면도 인상 깊었다. 조진웅에게 마음의 상처가 아주 깊게 있구나,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후에 혼자 티라미수를 퍽퍽 퍼먹는 장면에서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실시했다.
그리고 느꼈다. 모두들 각자의 말 못할 상처가 있고, 비밀은 있지만 모두들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구나. 비밀을 지키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남의 비밀이든 내 비밀이든. 사람의 욕망 중 대화의 욕망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사람을 찾고, 내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도 들어주면서 참견하고, 그러면서 쌓아온 관계들이기에.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지금까지 내 뇌리에 깊게 박힌 것은 그것을 읽었던 아주 오래전 어렸을 때에도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입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 점을 확실히 간파하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마지막에 '영배'역을 맡은 윤경호 배우가 "사람의 본심은 월식과 같아서 잠깐 가릴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드러나게 돼있어."라는 말이 정말 와 닿았다. 나 또한 사람을 대할 때 '내 감정을 티 내지 말자, 잘 대해주자'라는 마음으로 시작은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본심을 드러내는 행동과 말을 한 후 집에 돌아와 '티 났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모습이 보이면서 찔리고, 조마조마하면서 반성도 많이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를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짜임새 있고 지루하지 않게 필요한 장면만 넣어서 담백하게 만든 것 같다. 불편하다는 분들의 이야기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런 불편함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역으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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