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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의 조각들>

cavtus 2021. 1. 11. 22:02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테이크 혹은 롱테이크는 영화에서 사실감을 부여하기 가장 좋은 촬영기법이다. 영상 편집 없이 카메라의 이동으로 자연스레 상황의 전경을 보여주는 것. 카메라 무빙에 따라 관객의 시선은 이동하고, 그 사이에 관객은 누구보다 몰입하게 된다. 장소 전체를 보여줌으로써 현장감을 최대로 살린다. 이러한 기법이 자주 사용되는 대표적인 영화로 <1917>이 있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그녀의 조각들> 또한 이 기법을 자주 사용해 가뜩이나 사실적인 소재와 연기를 더욱 사실적으로 감상하게 한다. 

 

<그녀의 조각들>은 첫 장면부터가 사실 자체로 느껴진다. 임산부 마사(바네사 커비)의 진통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녀는 원래 신뢰하던 조산사 바버라에게 연락하지만, 그녀가 다른 임산부를 도와주는 터라 에바라는 조산사가 마사를 대신 맡게 된다. 탐탁지 않았지만 가정 출산을 하고 싶었던 마사는 에바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출산한다. 그러나 몇분 지나지 않아 아이의 몸은 피가 통하지 않는 보라색을 띄고, 세상을 떠난다. 이유도 모른 채 마사는 아이를 눈앞에서 떠나보내고, 에바는 징역형을 받을 위기에 처한다. 

 

이후 마사는 사과를 사러 간 마트에서 "엄마에게 이야기 다 들었다"며 엄마의 친구에게 붙잡혀 오랜 시간동안 위로의 말을 듣고 만다. 그녀는 아기의 묘비명을 보러 간 곳에서 아이의 이름 스펠링이 잘못된 것을 보고 남편 숀(샤이아 라보프)이 '사소한 문제'라고 하자 꼭지가 돈다. '사소한' 문제라면 묘비 만들 이유도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어쨌든 다시 복직도 하고 아기의 일과는 상관없이 잘 살고 싶었던 마사의 바람과는 달리 사람들의 이런 저런 눈초리와 이야기, 에바와 관련한 징역형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게다가 담배를 다시 피기 시작한 숀과 그의 차에서 발견한 여자 귀걸이와 함께 숀에 대한 애정도 식어버린다. 

 

이후 그녀는 엄마의 집에 형부네 가족과 숀, 숀과 바람핀 사촌인 변호사가 있는 곳에서 엄마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하지 않겠냐"며 재판에 나가서 증언할 것을 요구한다. 마사는 그럴 의유 없다고, 엄마를 쳐다보며 "엄마는 내가 실패해서 쪽팔린 거"라고 말한다. 그러다 엄마에게 몰랐던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는 "어렸을 적 태어나면 안 되는 곳에서 태어났기에 조용히 지내야했고, 적당히 생명을 연장할 정도로만 젖을 먹으며 자랐다고. 그렇게 힘들게 태어나고 자랐기에 이 일의 책임을 누군가에게 물어야하지 않겠냐"고 마사에게 말한다. 마사는 그만하라고 한다. 

 

그리고 엄마는 숀에게 돈을 주며 떠나라고, 다시 돌아오지 말라고 전한다. 마사는 남편을 고향 시애틀에 가는 길로 배웅하고, 에바의 재판에 증언하러 온다. 그곳에서 마사는 변호사의 질문에 대답한 뒤 그녀가 아이를 출산했을 때 숀이 찍었던 카메라 필름을 찾으러 사진관에 간다. 거기서 발견한 사진을 인화하고, 마사는 다시 증언대에 선다. 그녀는 말한다. "죽은 애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무엇도 돌이킬 수 없다고. 어떻게 이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 있겠냐"고, "제 딸은 그런 목적으로 세상에 나왔을 것이 아니라"고. 그녀는 엄마를 바라보며 한층 시원한 표정으로 이 말을 전한다. 집에 돌아온 마사는 그전에 화장솜에 붙여놓은 사과씨에 싹이 돋아난 걸 보고 웃는다. 그리고 엄마와 언니와 함께 편안한 일상을 보낸다. 

 


다리와 사과,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두 가지 물체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을 다리의 진행 상황으로 표현한다. 이 다리는 작업 반장이자 마사의 남편인 숀이 딸이 가장 먼저 지나가게 해주겠다며 선언한 다리다. 이후 유산으로 인해 마사와 숀 사이의 균열이 점점 커지고, 숀은 더이상 다리 짓는 일에 가담하지도 않고, 다리를 다시 밟기 힘들겠지만 역설적이게도 마사는 아이의 뼈를 이 다리 위에서 뿌린다.

 

그리고 사과. 영화 속 마사는 사과를 자주 먹는다. 마트에서 사과를 집는 모습, 사과를 먹는 모습, 사과의 씨를 통해 발아를 이루려는 모습들. 사과는 전통적으로 생명의 상징이어왔다. 아담이 금단의 과일인 선악과를 먹자마자 창조주가 갑자기 나타나버리는 바람에 사과가 목에 걸려 남성의 울대뼈를 아담의 사과라고 부르는 이유다. 생명을 나타내는 사과는 마사가 발아시키려는 존재가 된다. 이후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하는 넓은 사과나무 밭. 그곳에서 한 여자아이(루시)는 나무에 올라가 사과를 딴 뒤 한 입 베어문다. 루시는 누구의 아이인지 나오지 않는다.

 

의미심장한 비유와 상징의 물체, 배우의 명연기, 그리고 원테이크 촬영 방식. 사실 오프닝 장면만 30분 분량인데다가 아이가 죽은 뒤 영화의 제목이 등장한다. 신선한 오프닝이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사실 극복할 수 없는 것 같다. 아이는 내 마음 속에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슬픔을 극복할 수는 없어도 슬프지 않을 수 있다는 방식을 택하는 것을. 아이를 잃고 6개월 간 그녀는 흔들리는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서 극복해왔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 것도 아니고, 애초에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었고, 심하게 흔들리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기도 했다. 그래서 마사가 정말 멋있었다. 아픔을 아픔으로 두고, 직면하고, 혼자서 이겨냈기에. 

 

함께 보면 좋을 영화 <데몰리션>을 추천한다. 
'부인이 죽었는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거나, 사물을 보고선 조립이 아닌 분해를 하고 싶다거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은 원인을 찾지 않아도 괜찮을 때가 있다. 언젠가 마지막 분해까지 다 하고나면 알게되듯이.' (2년 전 쓴 코멘트)

마사도 데이비스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겨냈다. 사과씨의 발아과정을 통해 생명을 생명으로 이겨낸 것. 루시가 누구의 딸인지 나오지 않아서, 거대한 사과나무가 많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아가서, 도움이 되지 않는 남편과는 딱 잘라 헤어져서, 다행이었고, 위로가 됐고, 용기를 준 영화 <그녀의 조각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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