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레타 거윅(Greta Gerwig) 필모그래피

cavtus 2020. 12. 26. 16:23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속 여성 서사는 소중하고 위대하고 값지다. 백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영화들이 많아왔고 영화감독 중 여성 감독의 비율도 확연히 적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더욱 주목받았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여성 서사, 여성의 말을 대변하는 배우나 감독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은 그레타 거윅이다. 감독이자 배우인 그녀를 알게 된 건 <레이디 버드>였다. 티모시가 나와서 본 이유가 가장 컸지만 시얼샤 로넌의 매력과 그레타 거윅의 귀여운 연출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이후 <프란시스 하>를 보고 20대 여성이 짊어진 삶의 무게와 그녀가 원하는 자유를 흑백영화지만 다채롭게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아 좋아하게 되었다. 후에 <작은 아씨들>을 보고 그레타 거윅의 필모그래피를 알고 싶어 온전히 그레타 거윅이 출연했다는 이유로 본 영화들을 소개한다.

 

 

1. 프란시스 하(2014)

흑백의 감성, 자유의 메시지

프란시스 하는 현재 그레타 거윅의 연인 노아 바움백 감독의 작품이다. 그녀는 각본을 썼다. 개인적으로 그레타 거윅이 출연한 영화들 중에 두 번째로 좋아한다. 흑백 화면임에도 불구하고 영상미가 아름답고, 좋아하는 배우 아담 드라이버가 나오고, 무엇보다 프란시스 하라는 인물을 매력적으로 담았기 때문이다. 프란시스라는 인물은 돈은 없지만, 꿈이 있는 무용수다. 그녀가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기에, 여러 가지 일들을 전전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프란시스가 친한 친구(소피)와의 동거를 끝내고 다른 곳에 집을 구한 후 뛰어가는 장면인데, <작은 아씨들>에서 조가 원고를 팔고 뛸 때와 같은 느낌의 장면이었다. 기쁜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뛰어가는 장면 그 자체가 자유의 다른 이름으로 느껴졌다.

 

 

 

 

2. 매기스 플랜(2017)

 

남편 없이도 충분히 홀로 설 수 있는 엄마

레베카 밀러가 감독한 매기스 플랜은 올해 사유리가 선택한 '자발적 비혼모'를 주제로 다룬 영화다. 내용도 독특하고, 자발적 비혼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그레타 거윅의 독특한 연기도 돋보이는데, 무엇보다 영상미가 좋은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은 예술경영 교수로 살아가는 매기로, 결혼은 싫지만 아기는 낳고 싶어한다. 그래서 대학 시절 친구의 정자를 빌려 임신 시도를 하지만 에단 호크(이미 가정이 있는 남자)가 사랑한다고 하고 둘은 불륜 관계가 된다. 처음에는 비혼모에 대해 잘 모르기도 했어서 매기가 선택하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들었던 영화지만, 그레타 거윅만의 독특함 그리고 사랑스러움으로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 중에 대표작이 될 수 있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3. 우리의 20세기(2017)

그들의 개인적 서사

그레타 거윅이 출연한 작품들 중 세 번째로 좋아하는 영화다. 우리의 20세기는 아들 제이미를 키우는 도로시아가 혼자 키우기 벅차다는 생각이 들어 줄리(엘르 페닝)과 애비(그레타 거윅)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들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이 영화에 자주 나오는 노래가 있는데, 주로 주인공들이 독백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이나 서로에 관한 생각들, '그들은 어떻게 됐고,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들이 내레이션으로 나오고 장면도 자주 전환된다. 어떤 사상이나 생각을 전하는 대사들과 노래들이 이 영화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고 특히 도로시아가 아들 제이미가 말을 안 들었을 때 아들의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탓 하는 사고방식이 좋았다. 특히 아빠 없이 혼자 못 키울거라는 사람들의 말에 왜 혼자 못 키우냐며 되묻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애비가 생리를 자신있게 말해야 한다는 장면에서도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손 꼽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제목이 좋다. '나의'도 아닌 '우리의' 세기. 세기가 끝나간다는 것은 시대가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로시와 제이미, 줄리, 애비 모두 그들의 개성을 가득 담은 캐릭터로 표현돼 좋았다.

 

4. 미

 

 

4.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

소시민의 희망의 불꽃이 된다는 것은

그레타 거윅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한다. 뉴욕에서 대학생이 된 주인공 트레이시가 곧 언니가 될 브룩(그레타 거윅)을 찾아 뉴욕에서 만나는 이야기이다. 생각보다 따분한 대학생활에서 브룩을 만난 것은 큰 활력소가 됐고, 브룩의 이야기를 자신의 소설에 넣는다. 지독히도 현실적이고 어쩌면 불가능한 미래로 덮여있는 인물로 브룩을 표현하고, 그것이 나중에는 큰 화살이 되어 둘을 갈라놓는다. 주로 트레이시의 독백으로 이 영화는 전개되는데, 마지막 독백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돈 많고 뚱뚱한 여자들 살을 빼주고 돈 많고 멍청한 애들을 가르치고
돈 많고 얼빵한 남자는 덜 얼빵하게 만들어줬다. 메도우는 너무나 그 반대편에 서고 싶어했다.
뚱뚱하고 멍청하고 얼빵하고 돈 많은 편에...
하지만 레스토랑 주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 이상으로 메도우가 몰랐던 사실은
그 사람들이 자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다.
메도우만큼 멋진 사람은 없다. 메도우는 로맨스와 실패를 안고 사는 마지막 인류이다.
세상은 변해가고 메도우 같은 사람은 갈 곳을 잃었다.
소시민에게 희망의 불꽃이 된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각본이 궁금해서 또 이렇게 쓰고 싶어서 찾아본 첫 작품이었다. 각본은 노아 바움백과 그레타 거윅이 함께 썼다. 트레이시가 워낙 덤덤한 인물이라 그녀가 마치 3인칭 시점의 사람인 것처럼 독백하는 부분도 좋았고, 독특한 양언니 브룩의 매력이 좋았다. 특히 브룩의 전남친네 집에 가서 모인 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점입가경스러운 장면이 인상 깊다.

 

 

 

 

5. 방황하는 소녀들(국내 미개봉작)

미국 20대들의 청춘

톡톡 튀는 대사들과 알 수 없는 인물들로 가득한 영화였다. 이해하기 힘들었고 무슨 상황인지 몰랐으나 '그것이야말로 미국의 20대 청춘이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으로 봤다. 가장 좋았던 것은 바이올렛이라는 인물을 다채롭게 표현했다는 것. 정서 불안이 유년 시절에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우울증을 치료해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심리센터를 운영하고, '삼발라'라는 춤을 개발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예쁜 마음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바이올렛이 실연의 아픔으로 잠깐 떠나고, 하룻밤 묵었던 모텔의 비누향을 맡고 우울함이 사라져 식당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었다. 옆에 앉은 소방관과 요리사가 "자살하러 온 사람같다며 자살하지 말라고, 뒷처리 하기 어렵다"는 말을 전하니 바이올렛은 "제가 곧 자살할 사람처럼 보여요?"하며 비누를 꺼내 사람들에게 냄새를 맡게 해준다. 아날로그 시대에 20대로서 살아간다면 내가 가장 꿈꿨던 장면이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경계 없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마지막에 삼발라를 추는 장면은 미드 '프렌즈' 같으면서도 햇빛에 비추는 모든 것들이 반짝여 너무 아름다웠던 장면이었다.

 

 

 

6. 친구와 연인사이(2011)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에서 비중이 거의 없는 조연으로 출연한다. 나탈리 포트만의 의사 동기로 뚝심 있는 역할인데, 그레타 거윅의 필모그래피에 있을 만한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출연한 많은 영화들 중 여섯 편밖에 보지 못했지만, 이 영화들에서 그레타 거윅은 모두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항상 목소리를 내며 본인의 생각을 자유롭게 주장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그래서 그녀가 감독하는 영화도 좋다.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 그녀의 다음 영화는 무엇일지 기대된다.